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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퀘벡에 꽃핀 사회적 금융 ‘데자르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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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7-30 11:06 조회3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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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마시스의 ‘고리대금업자와 그의 부인’ ©Louvre Museum)

16세기 플랑드르 화가인 쿠엔틴 마시스가 남긴 ‘고리대금업자와 그의 부인’이라는 그림은 돈과 인간의 관계를 잘 드러낸다. 그림 속에는 책상 가득히 놓인 동전을 세는 고리대금업자의 핏줄 선 손과, 그 모습을 지켜보며 성서를 넘기는 부인이 보인다. 인물들의 뒤로는 선악과를 표현하는 듯한 선반 위 과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성서를 등한시한 채 남편이 세고 있는 동전에 정신이 팔린 부인의 모습에서 인간의 탐욕이 담겼다는 관점과 함께, 책상 위 거울에 비친 교회 종탑의 모습을 통해 욕망에 대한 경계를 표현한다는 해석도 있다. 그림의 모습처럼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16세기 유럽에서는 고리대금업자들이 농민들과 상인들을 대상으로 높은 이율로 돈을 빌려주며 그들의 삶을 어렵게 했다.



“150불을 빌려드립니다. 이자는 5,000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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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르뎅’ 설립자 알퐁스 데자르뎅 ©Desjardins)


고리대금의 폐해는 20세기 초 캐나다에서도 발생했다. 1900년 퀘벡주의 농촌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연 3,000%에 이르는 은행의 높은 폭리로 고통받고 있었다. 당시 캐나다 오타와주 하원 속기사로 근무하던 알퐁스 데자르뎅은 이같은 부당한 현실에 반발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금고를 만들기로 한다. 현재 북미최대 신용협동조합으로 성장한 캐나다의 금융그룹, 바로 캐나다 퀘벡의 ‘데자르뎅’이다.

데자르뎅의 설립자 가브리엘 알퐁스 데자르뎅은 1854년 캐나다 퀘벡시 레비스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지역언론 기자로 신문을 발행했던 그는 여러 사회·경제적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캐나다 오타와주 하원 속기사로 일하던 1897년 4월 6일, 데자르뎅은 고리대금 실태에 관한 의회 토론을 듣고 충격에 빠진다. 당시 보수당 의원이었던 마이클 퀸이 발의한 법안에 따르면 몬트리올의 한 농민은 150달러 채무액에 대해 5,000달러의 이자를 내야했다. 고리대금의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알퐁스 데자르뎅은 가난한 농민들의 삶을 쥐어짜며 부자들의 주머니를 불리던 고리대금 실태에 문제의식을 갖고 해결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는 약 3년간의 조사 끝에 고리사채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당시 유럽에는 금융협동조합 모델인 ‘민중 금고(Caisse Populaire)’가 운영되고 있었다. 데자르뎅은 이 모델을 캐나다 퀘벡의 상황에 맞춰 적용시켰다. 그는 주민들이 주인이 되는 은행을 착안했다. 한 사람당 5달러의 출자금을 내 금고의 주인이 되고, 가난한 농민들은 매주 10센트씩 나눠내도록 한 것이다. 1901년 1월 26.40달러를 모으며 소소하게 개시한 ‘레비스 민중금고(Caisse populare de Lévis)’는 알퐁스 데자르뎅과 그의 부인 도리멘 데자르뎅의 지속적 노력과 퀘벡주 성직자들의 도움으로 1907년 8년만에 132개의 민중금고를 세우는 데 성공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금융협동조합


알퐁스 데자르뎅은 노동자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국가의 개입없이 스스로 자산을 다룰 방안을 찾는 데 주안점을 뒀다. 이 같은 철학은 위기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북미의 경제상황은 크게 나빠졌으며 퀘벡 역시 극심한 침체를 겪었다. 이 기간 동안 데자르뎅은 37개의 민중 금고가 문을 닫고 총자산의 25%가 줄어드는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남은 민중금고들이 조합원의 예금을 변상하는 등 대출 회복에 힘을 쓰는 한편, 퀘벡 지역 전체를 관장하는 중앙연맹을 설립해 전체 조합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 경제위기 타파에 힘을 모았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데자르뎅은 1933년부터 1936년까지 매해 평균 33개의 민중금고를 새롭게 설립하는 쾌거를 거뒀다. 1936년 1,000만 달러 규모의 자산은 1960년 6억 8,700만 달러로 크게 늘었고 1,059개의 새로운 민중금고가 설립된다. 데자르뎅은 예금, 적금, 대출, 보험, 벤처캐피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며 현재 고용인원 4만 7,654명, 조합원 700만명, 자산 2,481억 캐나다달러(약 225조 8,000억원)에 이르는 대형 금융기관으로 성장했다.


데자르뎅, 우리나라에도 가능할까?


국내에도 농협, 새마을금고, 수협, 신협 등 다양한 상호금융기관이 존재하지만 다양한 문제점을 드러내며 한계를 노출한다. 특히 국내 금융협동조합은 전통적인 예·적금 상품만의 수신영업에 치중해 타 금융권에 비해 부족한 마케팅과 빈약한 금융서비스를 드러내며 소비자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데자르뎅의 사례는 이러한 문제에 직면한 국내 금융협동조합에 오히려 협동조합의 기본가치를 되돌아볼 것을 권유한다.


데자르뎅은 철저히 조합원을 위해 움직이는 금융협동조합이다. 민주주의와 지역사회 기여를 기본 이념으로 조합원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해왔다.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한 서브프라임모기지 같은 ‘고위험 고수익’ 상품은 제공하지 않지만 수익성이 낮아 일반 은행에서 기피하는 지역 농촌 고객 비율은 32%에 이른다. 캐나다 은행 평균인 2%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를 기록하는 이유는 조합원의 편의를 우선하는 데자르뎅의 경영가치에서 기인한다.


데자르뎅은 또한 민주적 결정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공정하고 평등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1인=1표’에 입각한 수평적 의사결정구조를 갖고 있는데, 17곳으로 나누어진 지역에서 255명의 대의원을 포함해 5,366명의 선출직 대표자들이 주민들의 의사를 대변하고 있다. 1,300명에 달하는 조합원 대표들이 직접 참석해 주요 경영 사항을 결정하는 데자르뎅 연차총회에서는 조합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위험성이 높은 금융상품 개발을 지양하고 지역사회 발전에 도움되는 사업을 결정하게 된다. 조합원의 의사가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같은 데자르뎅의 성공 뒤에는 퀘벡 주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있었다. 퀘벡 주정부의 지원으로 조성한 수천억 규모의 다양한 사회연대기금은 데자르뎅의 활동과 퀘벡의 사회적 경제를 정착시키고 지탱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기금, 세제 혜택 등 관련 법령 정비를 통해 금융협동조합의 활동을 더욱 용이하게 했다.


사회적금융 활성화를 통한 사회적경제 확립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내에서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국회에서는 ‘사회적경제기본법’ 입법이 추진 중이며, 금융위원회 자문기구 금융행정혁신위원회에서는 사회적금융 지원펀드, 금융조직 감독기준 마련, 임팩트투자 시장 활성화 지원 등 캐나다 데자르뎅 사례를 모델로 한 한국형 사회적 금융 활성화 방안이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세계는 여전히 소득 불평등, 부의 쏠림, 사회양극화 등 다양한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겪는다.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오늘날의 경제 불평등이 “친절한 협력, 상호관계, 공유, 상호 신뢰, 인정, 존중 등을 바탕으로 하는 공생에 대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갈망을 경쟁과 경합으로 대체한 데서 비롯된 결과”라고 지적한다. 유례없는 경제 불평등을 맞은 인류에게 ‘데자르뎅’이 추구해온 공생과 협동, 화합의 가치는 남다른 시사점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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