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가 인터뷰] 흙을 빚는 섬세한 손길로 지역에 디딤돌을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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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담당자 작성일15-04-20 11:00 조회2,52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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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빚는 섬세한 손길로 지역에 디딤돌을 놓다
디딤마을협동조합
지재옥 대표
(사진 오른쪽 끝)
여성 도예가들의 진지한 도전
어린 시절 수학여행이나 체험 학습에 대한 기억 속에 한 번 정도는 도자기 수업이 들어 있다. 손자국이 날것만 같은 부드럽고 고운 도자기 면에 신나게 그림을 그리고 날짜와 이름을 적어 넣고 나면 얼마쯤 후에 교실로 커다란 박스가 배달된다. 둘둘 말린 신문지를 풀어 내면 붓자국이 선명한 도자기 컵, 연필꽂이가 영롱한 푸른빛을 드러낸다. 여차하면 깨뜨릴까 조심스레 안고 집으로 돌아와 자랑스럽게 엄마에게 내보인 기억. 이제는 한 살 두 살 켜켜이 쌓인 내 나이만큼이나 차분하고 깊어진 빛깔을 띤 채 여전히 책상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흙이 주는 편안함이 있어요. 도자기를 빚는 건 흙 속에 혼과 감성을 불어넣는 일이죠. 예쁜 모양으로 잘 빚기만 한다고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게 아니라 유약을 바르고 굽는 과정을 거치면서 도자기가 생각지도 않은 모습으로 변하기도 해요. 사람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인 거죠. 이렇게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희열은 가끔 눈물이 날 만큼 매력적인 과정이랍니다.”
도자기를 빚는 매력에 대해 디딤마을협동조합(이하 디딤마을) 지재옥 대표는 이렇게 설명한다. 학창시절 느꼈던 감흥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듯싶다. 작은 그릇에 마음을 담아 내는 일, 디딤마을은 바로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일하고 싶지만 일하기 어려운 경력단절여성들, 주입식 교육에 지친 아이들과 학생들, 인생 2막을 맞이하는 어르신 등 다양한 지역 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마을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하나, 둘 디딤돌을 놓고 있다.
디딤마을엔 4명의 여성 도예가가 매일 같이 흙을 만진다. 취미로 시작한 도예가 어느덧 적게는 5년에서 많게는 8년차인 이들은 광명시 여성회관의 도예 전문인 과정에서 만났다. 흙이 너무 좋아서 평생 흙을 만지며 살고 싶은 마음이 통해 과정 수료 후에도 지속적으로 도예 활동을 하며 전문가적인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2012년 동아리를 만들었다.
“도예가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도자기 체험 같은 재능기부로 누군가의 디딤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어요. 나아가 지역 여성의 일자리를 만들고 좋은 일도 하며 수익을 창출할 목적으로 마을기업을 지향하면서 ‘디딤마을’이라는 이름을 지었고요.”
2013년부터는 지역 아동들과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출장 수업을 하는 등 재능기부 활동도 열심히 해 왔다. 그러던 중 이들은 취미나 개인 사업이 아니라 보다 책임감 있고 안정적인 경력단절여성들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에 대해 좀 더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스스로가 경력단절여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시작했기에 어쩌면 당연한 고민이었을 것이다.
“개인사업자로 활동하는 거라 언제든 문을 닫을 수 있었죠. ‘지속성’에 대해 고민하면서 협동조합을 생각했어요. 이미 내부적으로는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예술혼과 주부의 손길로 만들어 낸 교육
2014년 2월, 전문 강사의 참여로 전문성을 더해 5인 체제의 직원협동조합으로 재탄생한 디딤마을은 도자기 및 수제차 제조, 판매, 교육 사업을 주 사업으로 하고 있다. 특히, 교육 사업의 경우 1일 체험, 출장 교육 등 아동은 물론 성인까지 아우른다.
“길게 하는 과정은 수강생들이 견디질 못해요. 도자기라는 게 1, 2년 가지곤 안 되고 최소 10년은 해야 하는데, 해 보라고 섣불리 얘기하진 않아요. 즐겁게 맛보는 정도죠. 또 많은 인원을 하게 되면 교육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강사 1명당 10명 이하, 출장으로 단체 교육을 가더라도 20명은 넘지 않도록 해요. 인원이 많은 단체 교육의 경우는 아이들 감성 발달에 도움이 되도록 흙놀이 위주로 진행해 저희도 함께 즐기고 오죠.” 비용 경쟁력 때문에 교육 대상은 대부분 아이들이다.
“창의적 체험수업이라는 게 있어요. 중학생들 대상 수업에서는 60여명의 아이들이 빚은 걸 저희가 모양을 잡고 정리를 해서 나중에라도 아이들이 직접 쓸 수 있게 유약을 발라 구워 내죠. 깨지지 않도록 뽁뽁이 포장을 하고 아이들 이름을 써서 배송하는 것까지 마치면 교육이 끝납니다.”
국공립 교육 기관을 주요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체험 비용도 그리 높게 책정하지 않았지만, 교육을 준비하고 출장 교육을 나가고 돌아와서는 뒷마무리 작업까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보니 정작 디딤마을 자체 제품 생산에 필요한 시간과 여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래도 교육을 소홀히 할 생각은 없다. 아이들이 흙을 만지며 흙과 건강한 교감을 이루는걸 체감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회성 수업이 아닌 꾸준히 수업을 지속하는 사례를 만들어 내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데, 광명 지역의 대안학교‘ 꿈비’가 바로 그러한 사례다. 2년 이상 꾸준히 수업을 받아 온 꿈비의 아이들은 이제는 직접 유약을 바르는 수준이라고. 아이들이 좀 더 의미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광명시 관내의 현직 교사들에게 교육모델 개발을 위한 컨설팅도 받았다. 과도한 목표로 욕심을 내지 않고, 마무리까지 꼼꼼히 해 내는 모습에서 우직하고 조금은 고집스러운 예술가적 기질과 살뜰히 돌보는 주부의 손길이 느껴
지는 듯하다.
위기를 넘어 다시 시작하기
흙을 사랑한다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업을 하는 만큼 위기와 갈등도 정해진 코스처럼 다가왔다. 조직을 만들고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지역과의 관계를 만들면서 4개월여를 준비했던 마을기업 심사에서 떨어졌을 때 구성원들은 크게 흔들렸다.
“일은 많고 몸은 고달프고 수익과 결과물은 없으니 많이 지쳤죠. 처음 시작할 때를 떠올리면서 협동조합으로 다시 해 보자고 구성원들을 설득했어요. 절박한 심정으로 영업을 시작했죠. 공격적인 영업 덕분인지 수입이 이전의 2배로 늘어났어요. 요즘은 모르는 곳에도 전화하는 용기가 생겼답니다. 안 그러면 문을 닫아야 하니까요.”
한고비는 넘겼지만 불안정한 수입과 공통의 비전과 목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갈등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서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일을 하는 것이라는 처음 마음을 잃지 않으면 수익이 많지 않아도, 반드시 협동조합의 형태를 유지하지 않더라도 같이 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지 대표. 말로는 협동조합이 아니어도 된다고 하지만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에도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었고, 힘이 들 때면 자연스럽게 ‘협동조합’이 떠오른다고 한다.
“협동조합이란 게 누가 힘들면 내가 좀 더 하고, 내가 힘들면 그 사람이 도와 주고 그런 거잖아요? 저희는 작은 결정 하나도 옆에 물어볼 사람이 있는데, 일반적인 조직에서 담당자 한 사람이 혼자 고민하고 결정하는 걸 보면 깜짝 놀라요. 함께 상의하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어느새 공유하고 소통하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어요.”
내부의 갈등을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소통’이라고 말하는 지 대표는 최근 광명의 다른 사회적경제 기업 및 지역의 여러 주체들과도 소통을 넓히고 있다고 한다. 지역 내 다른 공방은 물론 소상공인들과도 다양한 형태의 협업을 준비 중이며, 디딤마을의 제품을 위탁 판매할 수 있는 장소도 생겼다고.
“공방 근처, 15년 정도 된 카페 ‘coffee cia’에서 저희 제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카페 한편에 공간을 내주셨어요. 제품 판매와 더불어 카페 공간을 활용하여 도자기 강좌도 하고, 작은 연주회나 인문학 강좌를 여는 등 지역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려 카페 사장님과 함께 논의 중이에요. 성공적으로 사업이 진행되면 문화카페 1호, 2호, 이런 식으로 차차 늘려나가고 싶어요.”
디딤마을은 끊임없이 지역의 사회적경제 기업들, 지역주민과 지역의 공간 사이에서 또 하나의 디딤돌을 놓고 있었다. 협동조합이 활성화되면 창립멤버로서 계속 도자기를 빚으며 도예인으로 살고 싶다는 이들의 소망이 예술가와 장인 특유의 근성과 고집으로 지역에 따뜻한 온기를 쉼 없이 전파해가길 기대한다
출처 : 「2014년 사회적경제, 내일을 상상하라」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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